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것. 흔히 '서브3'라 부르는 이 기록은 아마추어 마라토너들 사이에서 '꿈의 기록'으로 통한다. 그만큼 달성하기 힘든 기록이기 때문에 서브3 주자들의 숫자는 그 동호회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서브3 주자가 한 명도 없는 동호회가 있다. 그리고 이 동호회에는 그 사실을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닌다. 서브3 주자가 전무(全無)한 마라톤 동호회. 하지만 이를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회원들.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강북 마라톤 클럽'만의 모습이다.
지난 2003년 창단한 강북마라톤클럽은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브3 주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자랑처럼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기록'보다는 '즐거움'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기록은 '부담'을, 부담은 '부상'을 낳는다
"서브3 주자가 한 사람도 없는 게 왜 자랑거리냐고? 그만큼 무리하지 않고, 마라톤을 즐기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죠."
이만희(54) 동호회장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동호회가 '서브3'라는 '기록'에 집착하다 보면 회원들에게 무리한 훈련을 강요하기 마련"이라며 "이는 곧 회원들의 부상을 낳게 된다"고 지적했다. 5년째 훈련코치를 맡고 있는 이경오(54) 코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이 코치는 "기록이란 게 물론 달성하고 나면 성취감을 가져다주지만, 기록을 쫓다가 부상이라도 입게 되면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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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만희 회장과 이경오 코치의 말을 정리해 보면 서브3 주자가 없는 것 자체를 자랑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서브3 주자가 없는 사실보다 '기록' 자체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 동호회의 자랑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사실 강북마라톤클럽이 이처럼 '기록' 추구를 철저히 배척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만희 회장과 이경오 코치 등 임원진들이 겪은 '경험' 때문이다.
"제 최고 기록이 3시간 15분입니다. 몇 년 전에 세운 기록인데 거기서 조금 더 욕심을 내니까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다 결국 부상까지 당하게 됐고요. 부상당한 몸으로 남들 뛰는 모습을 구경만해야 하는 게 얼마나 마음고생이 큰지 제가 잘 알죠." - 이경호 훈련코치
이처럼 기록을 추구하지 않는 클럽 문화는 임원진들이 몸소 체험하거나, 다른 동호회의 모습을 지켜보며 '경험'으로 터득한 결과다. 강북마라톤클럽은 그러한 경험에서 '기록'보다 우선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확실히 배운 것이다.
'전원 완주'라는 목표가 불러온 역효과
지난 2008년 가을 대회 때 일이다. 여성회원 및 초보회원을 포함한 30여명의 회원들이 풀코스에 도전해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전원 완주'하는 기록을 세웠다. 강북마라톤클럽으로선 나름 큰 성과를 거둔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기록 달성 이후에 발생했다. 일부 회원들에게 '전원 완주'라는 목표가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 결과적으로 목표는 달성했지만 몇몇 회원들이 당시 무리한 달리기로 마라톤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 것이다. 초보 회원들은 다음 대회에서 풀코스 도전 자체를 꺼리는 모습까지 보였다고 한다.
이후부터 강북마라톤클럽은 '기록'이나 '목표'를 절대 세우지 않게 됐다. 오히려 회원들이 기록을 생각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인터벌, 지속주 훈련 등 다른 동호회에서는 '기본'이라 생각하는 훈련도 없다. 대신 무리하지 않는 훈련 덕분에 강북마라톤클럽은 부상으로 고생하는 회원들이 거의 없다.
"주변에서 '서브3' 달성하고 나서 1~2년 제대로 못 뛰는 사람들도 봤습니다. 그분들 막상 기록 달성하고 나서 '허무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군요. 막상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마라톤에 대한 매력을 잃게 됐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 이만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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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보다는 '재미'가 우선
강북마라톤클럽에 있어 마라톤을 하는 이유는 오직 '건강'과 '재미있는 삶'을 위해서다. 그러니 어차피 '선수'가 아닌 이상 굳이 '기록'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록에 대한 집착을 버리자 '재미'가 찾아왔다고 한다. 실제로 회원 대부분이 현재의 방식에 매우 만족해하는 모습이다. 동호회 공식대회가 잡히고 대회 참가일이 다가와도 부담스럽지 않다. 컨디션 조절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이 그냥 신나게 달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강북마라톤클럽이 '훈련'을 전혀 안하는 것은 아니다. 목표를 세우지 않는 것과 훈련을 하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신 훈련에서도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노력은 계혹된다.
강북마라톤클럽은 현재 A, B, C팀으로 나눠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팀을 나누는 기준 역시 '기록'이 아닌 '나이'다. 40대는 A팀, 50대는 B팀, 여성회원과 60대 이상 회원이 C팀이다. 그런데 사실 '나이순'과 '기록순'이 거의 일치하는 모습이긴 하다.
훈련도 대회 참가도, '강제'는 없다
각 팀별로 팀장을 두고 있지만 전체적인 훈련일정 및 대회스케줄은 이경오 훈련코치가 총괄한다. A, B, C팀 모두 훈련거리는 똑같다. 매주 정해진 훈련 코스를 전 회원이 함께 달린다. 물론 그룹별로 달리지만 소속에 관계없이 컨디션에 따라 뛰고 싶은 만큼만 달리면 된다.
대회 참가 역시 마찬가지다. 동호회 공식 참가대회는 존재하지만 그 역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일 뿐이다. 대신 동호회 내 소모임은 금지다. 소모임이 동호회 전체의 단결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등산, 자전거 등 마라톤 이외의 취미를 가진 회원들도 많지만 이들이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반대하고 있다. 조직 내부에 작은 조직이 생기면서 친목을 해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처럼 정회원 75명의 지극히 평범한 마라톤클럽. 서브3기록자가 한 사람도 없는, 오히려 그게 자랑이라는 강북마라톤클럽의 이만희 회장은 동호인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평범하면서도 자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목표를 가집시다. 그게 채워지면 회원 간 서로 가족처럼 아껴줄 수 있고, 마라톤이란 운동에서 충분한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라톤에는 '기록' 보다 더욱 소중한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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